영화 ‘암살’은 역사를 재현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인물 중심의 서사로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입니다. 특히 경성과 상하이라는 도시 배경 속에서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의 감정선은,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낸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. 이 글에서는 역사적 맥락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 숨 쉬었던 인물들, 그리고 그들이 머물렀던 도시를 중심으로 영화 ‘암살’을 다시 들여다봅니다.
경성이라는 무대, 인물들의 선택과 무게
경성은 모든 선택이 질문으로 돌아오는 공간이었습니다. 안옥윤이 처음 등장했던 장면을 떠올려보면, 그 차가운 경성 골목길에서 그녀는 단지 ‘암살자’가 아니었습니다. 그녀의 얼굴은 누군가의 딸이자, 동지였고, 운명을 짊어진 채 무너질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.
염석진 역시 경성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또 다른 얼굴입니다. 그가 형사라는 직업 안에서 만들어낸 이중적인 삶은, 경성이란 도시가 사람을 어떻게 집어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. 경성은 분명 거리였지만, 동시에 감정이 조이고 터지는 심리의 무대였습니다. 이 도시는 냉정했고, 그래서 더더욱 인물들은 뜨거웠습니다.
상하이라는 도피처,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마음
상하이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처럼 보입니다. 하지만 그것은 ‘잠깐’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허상이었습니다. 상하이는 도피처였지만, 동시에 망각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장소였죠. 김원봉이 상하이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들, 안옥윤이 무기를 챙기며 준비하는 그 눈빛은 상하이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말해줍니다.
상하이의 거리는 화려했지만, 그 속의 인물들은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. 상하이는 오히려, 경성보다 더 내면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 같았습니다. 그곳에서 인물들은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자주 흔들렸고, 그 불안은 그대로 관객의 마음까지 전해졌습니다. 도시는 공간이 아니라,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‘거대한 감정 덩어리’였습니다.
도시에 녹아든 인물들,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잔상
영화 ‘암살’의 가장 깊은 감동은, 그 인물들이 현실과 맞서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. 안옥윤은 암살자였지만,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과 상실을 품고 있었습니다. 그녀가 마지막 총을 들 때, 그것은 단지 임무의 완수가 아니라 자신 안의 무언가와의 이별이었습니다.
염석진은 배신자였지만,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습니다. 물론 그 이유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. 하지만 그를 단순히 악인으로만 볼 수 없는 건, 그 또한 경성과 상하이에서 만들어진 ‘사람’이었기 때문입니다. 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, 선과 악을 나누기보다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.
도시는 인물을 만들고, 인물은 도시를 기억하게 합니다. 우리는 경성과 상하이를 통해 그 시대를 조금이나마 체감했고, 그 속에 녹아든 인물들을 통해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영화 ‘암살’은 단지 총성과 사건으로 기억되는 영화가 아닙니다. 도시의 공기, 거리의 소음,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인간 서사의 총체입니다. 경성과 상하이, 그 속에서 살아간 인물들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생히 숨 쉬고 있습니다.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묻습니다. 우리는, 그리고 나는 어떤 도시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.